균형 위에 선
민주주의의 위험한 유산
민주주의는
언제나 균형 위에 세워진 제도다.
헌법이라는 문서 속에
세부 규정을 나열하더라도,
그 틈을 메우는 건
결국 관습과 절제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규범이다.
미국 역시 예외는 아니다.
1937년,
프랭클린 루즈벨트가
연방대법원을 재구성하려는 시도는
이 사실을 극명히 보여준다.
헌법 3조에는
대법관 수를
구체적으로 정한 조항이 없었다.
루즈벨트는 이를 이용해
70세 이상의 판사 수만큼
새 판사를 추가로 임명하려 했고,
최대 15명까지 대법원을 키우려 했다.
하지만 이 시도는
거센 저항을 불러왔고,
결국 좌절됐다.
대공황이라는 국
가적 위기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견제와 균형 시스템은
무너지지 않았다.
사실 미국 정치사에는
이런 위기가 반복되어 왔다.
독립전쟁 이후,
정치인은 '경쟁자'와 '적'을
구분하는 문화를 배워야 했다.
마틴 반 뷰렌 이후
정착된 이 관용의 문화가
미국 민주주의의
기둥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남북전쟁은
이 구조를 송두리째 흔들었다.
노예제 문제로
양극화된 미국은
결국 전쟁으로 치달았고,
전쟁 속에서 민주주의는 중단됐다.
링컨 대통령조차
인신보호법을 정지시키며
행정권을 확장할 수밖에 없었다.
남북전쟁 후에도
미국 민주주의는
쉽게 정상 궤도로 돌아가지 않았다.
1877년 '타협'은
공화당 대통령
러더포드 헤이즈 당선을 대가로
연방군의 남부 철수를 결정했고,
이로써 흑인들의 참정권은
사실상 붕괴됐다.
1890년 헨리 캐벗 로지의
선거법안 좌절은
남부 흑인 유권자의
정치적 소멸을 확정 지었다.
이렇게 미국의 민주주의는
인종 문제를 논의 테이블에서 제거하는
뼈아픈 타협을 통해 겨우 생존했다.
견제 시스템의 비밀
— 규범의 존재와 침묵
이 모든 과정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바로 비공식적 규범이다.
영국 학자
제임스 브라이스가 지적했듯,
미국 민주주의는 헌법 그 자체보다
헌법을 활용하는 방식,
즉 정치인들의 자제가 핵심이다.
대통령제를 운영하는
민주주의에서
입법부와 사법부는
견제자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정당 간 적대감이
상호관용을 압도하면
이들은 쉽게 대통령의 권력 확장에
가담하게 된다.
대통령이 독재로 치달을 때,
입법부와 사법부가
감시견이 아닌
애완견으로 전락하는 장면은
이제 낯설지 않다.

행정명령, 사면권, 대법관 임명권은
대통령의 칼이다.
필리버스터, 인준, 탄핵권은
입법부의 방패다.
양측이 무기를 함부로 휘두를 때
시스템은 붕괴한다.
20세기에 접어들면서
국가적 위기와 전쟁을 거치며
대통령 권한은 비대해졌고,
제왕적 대통령제가 자리를 잡았다.
시어도어 루즈벨트의 '관리자 이론'은
이러한 흐름을 상징한다.
법이 금하지 않는 한
모든 것을 시도하는 권력 해석은,
결국 포퓰리즘적 대통령 운영을
가능케 했다.
규범의 붕괴와 반복되는
민주주의 위기
사실 미국은 이미 여러 차례
이러한 규범 붕괴의
시험대에 올랐다.
루즈벨트의 비대해진 권력은
임기 내 3,000건에 달하는
행정명령으로 나타났고,
결국 임기 제한을 담은
수정 헌법 22조가 만들어졌다.
1950년대 매카시즘은
국내 정치의 사냥개가 되어
민주주의를 뒤흔들었지만,
아이젠하워와 군의 맞대응으로
매카시는 몰락했다.
닉슨의 워터게이트는
또 다른 전제적 폭주였다.
그는 야당과 언론을 적으로 삼고,
국세청까지 정치도구화했다.
그러나 대법원과 의회의 협력으로
결국 대통령 스스로 사임해야 했다.

이 세 차례의 위기는
모두 '규범의 복구'로 마무리됐다.
그러나 그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하나였다.
양당이 최소한의
민주주의 가드레일을 지키려는
집단적 합의가 살아있었기 때문이다.
인종 문제라는 숨겨진 뇌관
하지만 그 균형의 기저에는
슬픈 진실이 놓여 있었다.
미국 정치의 양당 협력은
사실상 인종차별을
의도적으로 논의 밖으로
밀어내는 대가로 유지되어 왔다.
남부 민주당과 북부 공화당 간
이념적 유사성은
양극화를 늦췄지만,
흑인의 정치적 권리는
대가로 희생됐다.
미국 정치가 지탱되어 온
수십 년간의 ‘은폐된 불균형’은
이후 치명적인 양극화로
폭발하기 시작한다.
깨어지는 규범, 시작된 정치 전쟁
1979년, 조지아 출신의
젊은 정치인 뉴트 깅리치는
이 모든 구도를
송두리째 흔들기 시작했다.
그는 정치를 '전쟁'으로 간주했다.
상대를 존중하는 경쟁자가 아닌,
반드시 제거해야 할 '적'으로 규정했다.
C-SPAN이라는
신흥 매체를 무대 삼아
깅리치는 의도적으로
자극적인 언어를 반복했고,
'썩은', '배신자', '기괴한' 등의 형용사가
그의 정치 언어가 되었다.

1994년, 깅리치가 이끄는 공화당은
하원 다수당을 탈환하며
40년 만에 권력 구도에
지각변동을 일으켰다.
깅리치 이후
공화당의 전략은 명확했다.
타협은 패배로 간주됐고,
협력은 배신이 되었다.
이는 결국 정부 셧다운과 같은
정치적 인질극으로 이어졌고,
의회의 전통적 민습은 종말을 맞았다.
그 뒤를 이은 톰 딜레이 역시
‘해머’라는 별명답게
무자비한 당파적 공세를 강화했다.
공화당 인사들을
로비업계로 끌어들여
당파적 보상 구조를 만들어낸
'K 스트리트 프로젝트'는
정치와 이익집단이
교묘하게 결탁하는 장을 만들어냈다.
오바마 시대,
완전히 무너진 자제의 규범
이후 부시 행정부와
칼 로브의 전략, 티파티의 급진화,
그리고 오바마 시대로 넘어오면서
자제라는 규범은 완전히 붕괴된다.
티파티와 '버서 운동'은
오바마가 미국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음모론과 출생 의혹을 퍼뜨렸다.
정당 간의 논쟁이 아니라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정체성 정치’로 전환된 것이다.

특히 의회 내 필리버스터 사용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2007~2012년 사이
385건이나 기록되며
의회를 마비시켰다.
이에 맞서 민주당도 규범을 깨며
'핵 옵션'을 발동,
대다수 대통령 임명에 대한
필리버스터를 금지시켰다.
이제 규범이라는 완충장치는
사실상 사라졌다.
오바마 역시 규범 붕괴에 가담했다.
의회를 우회해
광범위한 행정명령을 발동했고,
공화당 주지사들은
이를 거부하거나 무시하기 시작했다.
결국 대통령 권한과
주정부 권한의 충돌이 반복되며
시스템 전체가 흔들렸다.
미국 민주주의의 구조적 지형 변화
이 모든 흐름을 뒷받침하는
근본 원인은 따로 있다.
바로 정당의 내부적 재편과
미국 유권자의 문화적 양극화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두 당은 이념적 빅텐트였다.

그러나 시민권법 통과 이후
남부 백인은 대거 공화당으로 이동했고,
북동부 진보층은 민주당으로 이동했다.
이렇게 당의 정체성이
이념과 완전히 결합하게 되었다.
이제 민주당은 진보,
공화당은 보수 그 자체가 되었다.
이념적 차이만이 아니다.
미국 사회의 인구학적 변화도
이 갈등을 심화시켰다.
1950년 10%에 불과하던
유색인종 비율은
2014년 38%까지 상승했고,
2044년에는 절반을 넘어설 전망이다.
이민자와 소수민족 상당수가
민주당 지지로 유입되면서
공화당은 상대적으로
백인 개신교 기반으로 좁아졌다.
90% 이상이 백인이라는
공화당 지지층은
빠르게 줄어드는
'기존의 미국'을 지키려는
절박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낙태 합법화 판결(Roe v. Wade),
이민 확대, 문화적 다양성 심화는
공화당 지지층에게
위기감을 더욱 자극했다.
이러한 문화적 박탈감이
바로 역사가 리처드 호프스태터가 말한
'지위불안'이다.
지위불안이 심화될수록
정치의 편집증적 성향이 고조되고,
과잉 의심·극단화·종말론적
정치 담론이 확산되었다.
공화당의 급진화가 불러온 결정적 균열
규범 파괴가 공화당에서
먼저 심화된 이유는
몇 가지가 결합된 결과다.
첫째, 폭스뉴스를 중심으로 한
보수 미디어의 강화다.
공화당 지지자의 69%가
폭스뉴스를 시청했고,
우파의 사상적 경계는
이 미디어 생태계에서 공고해졌다.
둘째, 막대한 보수 정치자금이다.
코흐 가문을 비롯한 보수 자본은
수억 달러를 정치에 투입하며
공화당의 강경 노선을 뒷받침했다.
셋째, 문화적 동질성 유지다.
공화당은 여전히
압도적 백인 개신교 정당으로
남아 있으며,
상대적으로 민주당보다 사
회문화적 내부 다양성이 적다.
이 모든 요인이 맞물려
미국 정치의 규범은
이제 대부분 해체된 상태에 이르렀다.

갈등은 ‘정책의 차이’가 아니라
‘존재 자체의 부정’으로 비화되었다.
깅리치에서 시작된 ‘
전쟁으로서의 정치’는
트럼프 시대를 통해 완전히 정착된다.
이제 미국 정치에서
가장 두려운 질문이 남았다.
"민주주의를 지탱해 온
그 마지막 얇은 막조차,
언제 무너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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