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의 위태로운 토대 위에서
민주주의는
언제나 견고한 제도가 아니었다.
많은 사람들은 법과 제도가
민주주의를 지탱한다고 믿지만,
저자들은 책의 서문부터
명확하게 경고한다.
미국처럼 헌법이 튼튼하고,
중산층이 두텁고,
교육 수준이 높은 나라조차도
민주주의가
언제든 흔들릴 수 있다는 사실이다.
특히 권력을 가진 이들이
민주주의를 존중하지 않을 때
그 위험은 현실이 된다.
한때 미국은
연방 대법관 브랜다이스가 말한
'민주주의 실험실'로 찬양받았다.
그러나 법률이
권력자에 의해 조작되고
헌법이 그들의 손에서 변형될 때,
실험실은 전제주의 실험장이 되기 쉽다.
베네수엘라, 헝가리, 폴란드 등에서
민주적으로 선출된 지도자들이
헌법을 바꾸고 권력을 장악하며
민주주의를 붕괴시킨 역사는
이 경고가 현실임을 보여준다.
오늘날 민주주의는 군화발이 아니라
투표장에서 무너진다.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치명적 동맹
저자들은 민주주의가
스스로 붕괴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원인을
정치 엘리트들의 책임 방기로 지목한다.
무솔리니, 히틀러,
차베스, 후지모리 등
수많은 독재자는
스스로 힘으로 권력을 잡지 않았다.
기성 정치인들이
자신들의 단기적 이익을 위해
이들과 손을 잡으며
권좌로 이끌었고,
결국 그 대가를 치러야 했다.
극단주의자들이 등장하는 것은
민주주의에 언제나 잠재된 위험이다.
하지만 이를 차단하는
'문지기 역할'을 수행해야 할
정치 정당과 지도자들이
그 책임을 저버릴 때
민주주의는 한 걸음씩 파괴된다.
기성 정치인이
극단주의자를 배제하지 못하고
오히려 정치적 협력을 선택할 때,
이미 민주주의는 내부로부터
부식되기 시작한 것이다.
베네수엘라의 차베스가
대표적인 사례다.
쿠데타를 시도했던
아웃사이더였던 그는,
오히려 전직 대통령
칼데라의 지원을 받으며
합법적 정치 무대로 진입했다.
그 결과는 민주주의의 몰락이었다.

이솝 우화 속
말과 사냥꾼의 이야기가
이를 상징한다.
단기적 도움을 받고
사슴을 물리쳤으나
결국 사냥꾼의 고삐에 묶여
자유를 잃은 말처럼,
기성 정치가
극단주의자와 손잡을 때
민주주의는 속박당한다.
민주주의 문지기의 역할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서는
극단주의자들이
권력을 잡지 못하도록
정당들이 '문지기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야 한다.
저자들은
후안 린츠의 연구를 바탕으로
독재자의 위험 신호
4가지를 제시한다.
1. 민주주의 규범을 거부한다.
2. 경쟁자의 정당성을 부정한다.
3. 폭력을 선동하거나 용인한다.
4. 언론의 자유와 반대자의 권리를 억압하려 한다.
이러한 경고 신호를 보이는
정치인을 걸러내는 역할이
바로 정당과 그 지도자들의 몫이다.
역사적으로 스웨덴, 벨기에,
핀란드, 오스트리아 등의
민주주의 정당들은
극우파와 협력하지 않고
연정을 구성하거나
선거에서 단일전선을 형성해
극단주의 세력을 저지했다.
그러나 미국은
이러한 교훈을
끝까지 따르지 못했다.
무력화된 정당과 제도의 균열
미국 민주주의도
수차례 전제주의의 유혹을 겪어왔다.
찰스 코글린, 휴이 롱,
조지 월리스 등은
30~40%의 높은 지지율을 얻었지만
대통령에 오르지 못했다.
이들을 막아낸 것은
국민의 의지가 아니라
정당의 문지기 역할이었다.

초기 미국 헌법은
대통령 후보 선출 방식에 대한
명확한 규정을 두지 않았다.
건국자들은
선거인단이라는 장치를 만들어
민중 선동가의 등장을
차단하고자 했지만,
정당이 성장하면서
실질적인 후보 선출 권한은
정당 내부자들에게 넘어갔다.
담배 연기로 가득한 밀실 회의는
부패의 상징처럼
여겨지기도 했지만,
동시에 자질 부족한 후보를
걸러내는 장치이기도 했다.
그러나 20세기 들어
민주화를 확대한다는 명분 아래
정당 내부의 후보 검증 권한은
점점 축소되었고,
프라이머리 제도가 도입되면서
일반 유권자의 선택에
전적으로 의존하게 됐다.
특히 민주당은
일부 슈퍼대의원을 유지하며
균형을 시도했지만,
공화당은 이마저도 두지 않으면서
더 위험한 구조를 만들었다.
보이지 않는 프라이머리,
즉 조기 비공식 예비경선이
후보 선출의 핵심 관문이 되었으나,
이 역시 내부 검증 기능을
완전히 대체하지 못했다.
미국 사례와 2016년의 전환점
2016년은
미국 민주주의 문지기가
작동을 멈춘 해였다.
트럼프라는 아웃사이더는
공화당 주류의 견제를 받지 않고
후보로 선출됐다.
과거 같았으면 공화당 내부에서
그의 극단적 발언과 행동이 문제되어
후보 자격을 얻지 못했겠지만,
프라이머리 시스템은
오히려 대중적 인기만으로
그를 밀어올렸다.

트럼프는
린츠의 독재자 경고 신호
4가지 중 상당수를 충족시키며
민주주의에 위협이 될
소지가 농후했다.
경쟁자를 모욕하고,
언론을 적으로 규정하며,
폭력을 조장하고,
규범 파괴를 일삼았다.
그럼에도 공화당 지도부는
그를 배제하지 못했고,
일부는 정치적 계산 속에
그를 지원했다.
이처럼
정당의 문지기 시스템이 붕괴되면
선동가는 제어 장치 없이
권력을 쥐게 되고,
그 이후에는
민주주의의
제도적 기반마저 무너진다.
이 과정을 저자들은
베네수엘라, 헝가리, 터키 등에서
반복적으로 관찰했다.
민주주의 붕괴는 천천히 진행된다
저자들은
민주주의가 한 순간에
쿠데타나 군사력에 의해
무너지는 시대는 지났다고 지적한다.
현대 민주주의 붕괴는
선출된 지도자의 손에서
조금씩, 눈에 띄지 않게 진행된다.
법을 준수하는 척하면서
사법부를 장악하고,
언론을 길들이고,
선거제도를
자신에게 유리하게 조작하는 방식으로
권력을 영구화한다.

극단적 양극화는
이 과정을 더욱 가속화시킨다.
정책 갈등을 넘어
인종, 종교, 문화적 정체성까지
깊이 분열된 사회에서는
상대 진영을 '적'으로 간주하게 되고,
민주적 규범이 설 자리를 잃는다.
상호 관용과 권력 자제라는
민주주의의 비공식 규범이 사라질 때
제도적 장치는 속수무책이 된다.
민주주의를 지키는 것은 제도가 아니다
이 책이 가장 강하게
주장하는 바는 바로 이것이다.
민주주의를 지키는 힘은
헌법이나 제도가 아니라,
그것을 존중하려는
정치문화와 비공식 규범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상호 관용(mutual toleration)과
자제(forbearance)가
바로 그 핵심 규범이다.
상호 관용이란
상대 당을 합법적 경쟁자로
인정하는 태도이며,
자제란 법적 권한을 가졌다고 해서
그것을 무한히 행사하지 않는 절제다.
이 두 가지가 유지될 때
민주주의는 안정되지만,
이것이 무너지면
어떠한 제도도
민주주의를 지켜낼 수 없다.

오늘날 미국을 비롯한
여러 민주주의 국가는
양극화와 정당성 부정이 심화되며
이 경계선 위를 걷고 있다.
민주주의의 위기는
외부에서 오지 않는다.
내부로부터,
그리고 지도자의 유혹과
기회주의적 타협으로부터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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