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이라는 이름이 품은 뜻,
그리고 그 시작
강남을 생각하면
보통은 반짝이는 아파트 단지와
고급 오피스 빌딩을 떠올린다.
하지만
『도시문헌학자 김시덕의 강남』을
읽고 나면,
그 이면에 숨겨진 도시의 역사가
훨씬 더 복잡하고
다층적임을 깨닫게 된다.
사실, 오늘날 우리가 부르는 강남은
처음부터 '강남구'만을
의미하지 않았다.
영동지구와 잠실지구로 나뉘어 개발되었고,
그 명칭조차도 조선시대 양잠 시설인
'잠실'에서 비롯되었다.

잠실은 원래 서울 전역에 흩어져 있었고,
그중 서초구 잠원동이
'잠실리'로 불렸던 기록도 남아 있다.
과거 서울 시민들이
'잠실'하면 지금의 잠실동이 아니라
잠원동을 먼저 떠올렸다는 사실은
도시의 명칭조차도 시간이 흐르며
사람들의 인식 속에서 변형된다는
흥미로운 역사의 한 단면이다.
안보의 심리,
그리고 재산 증식의 욕망이 만든 강남
손정목 도시사학자의 지적처럼,
강남 개발에는
안보 심리가 깊게 깔려 있었다.
6·25 전쟁의 참혹함을 경험한
서울 시민들에게
한강 이남은 일종의 심리적 피난처였다.
언제든 남침이 일어나더라도
한강을 넘어 보다 쉽게
남쪽으로 도망갈 수 있다는
잠재적 안도감이
강남을 매력적인 공간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이런 안보 요인은
시간이 흐르며
재산 증식이라는 새로운 동기로 대체된다.
1980년대 이후 아파트는
단순한 주거 공간이 아닌
투자 상품이 되었고,
서초·강남·송파 3구는 그 중심에 섰다.
고소득층의 자발적 이주가 본격화되면서
강남은 단순한 지역이 아니라,
일종의 계층적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아파트 값 상승이
사회적 계급 이동의 통로가 된 이 시기는
한국 부동산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전환점이다.
자연을 밀어낸 개발,
침수로 돌아오는 부메랑
겉으로는 정교해 보이는
강남의 도시계획에 대해
김시덕은 그 속의 허술함을 지적한다.
넓은 평지 개발 과정에서
도로와 지하철을
골짜기에 밀어넣다 보니,
폭우가 내릴 때마다
도로 침수와 지하철 운행 중단이 반복된다.
평지의 숲을 밀어내고
산만 보존했던 개발 논리는
결국 자연의 순리를 거스른 결과였다.
도시는 끊임없이 확장되지만,
그 이면에서 드러나는 구조적 취약성은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더 빈번하게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강남이라는 이름 뒤에 숨겨진
이런 불안정한 기반은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비싼 땅값을 자랑하는
지역이라는 점에서
도시 개발의 역설을 상징한다.
공익이라는 이름 아래
사라진 사유재산
한국 정부는 강남 개발 과정에서
수많은 토지를 강제 수용했다.
정부와 시행사는
항상 '공익'과 '서민 주거 안정'을
내세웠지만,
그 결과는 수억 원의 시세 차익이
돌아가는 아파트였다.
심지어 골프장 같은
고급 레저시설 개발에도
같은 논리가 적용됐다.

이는 자본주의 원칙에도,
공공의 이익이라는 대의에도
어긋나는 이중 잣대였다.
강남의 역사는 이렇게
개인의 재산권이
공익이라는 명분 아래 제한되고,
다시 소수의 이익으로
전환되는 과정을 반복해왔다.
토지 수용 제도 자체가 가진
모순과 불평등 구조가
한국 부동산 시장 전반에
뿌리 깊게 자리 잡은 이유이기도 하다.
'확장 강남'이라는 새로운 권역
강남 개발은
서울 도심 안에만 머물지 않았다.
영동지구와 잠실지구 개발 이후,
강남은 점차 남하했고,
성남·분당·판교·
동탄·광교·고덕으로 이어졌다.
더 나아가 충청권의 천안·아산·오송까지
확장된 ‘확장 강남’은
이제 수도권을 넘어선
거대한 생활·경제 권역으로 성장 중이다.
김시덕이 '확장 강남'이라 부른 이 개념은
결국 부동산 자본의 논리가 만들어낸
새로운 공간질서를 뜻한다.
이 확장 강남은
교통·일자리·주거·교육이 집중되며,
수도권 광역경제권 전체를
바꾸어놓고 있다.

GTX와 SRT,
킨텍스와 삼성동 국제교류복합지구가
연결되면서
이른바 '3핵 서울'이라는
신경제벨트가
서서히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아파트는 바뀌고,
단독주택은 남는 도시의 또 다른 이면
강남 개발 50년의 시간을 돌아보면
아파트 단지는
활발히 재건축되고 있지만
단독주택이나 빌라촌은
여전히 과거의 모습을
유지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영동시영주택단지처럼
언덕에 위치해
필지 통합이 어렵기 때문이다.
꼬마빌딩이 곳곳에 들어서고,
재개발 추진은 한계에 부딪힌다.
이처럼 강남도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복잡한 양상으로 갈라지고 있다.
강남이라는 도시문명,
그리고 우리가 바라봐야 할 것들
『도시문헌학자 김시덕의 강남』 은
단순한 부동산 개발의 성공담이 아니다.
그것은 한국 현대사의 축소판이며,
권력, 돈, 심리, 개발이
어떻게 얽히고설켜
오늘날 우리가 아는 강남이라는
상징적 공간을 만들었는지를 보여준다.
지금도 부동산 뉴스의 중심에서
결코 사라지지 않는 강남이다.

그러나 이 책은 그 화려함 뒤에 숨겨진
긴 역사와 모순을 정면으로
마주하게 만든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
‘강남’이라는 공간을 더 입체적으로,
더 성찰적으로 바라보게 된다.
개발은 끝나지 않았고,
확장 강남은 여전히 자라나는 중이다.
서울이라는 거대 도시는
여전히 성장 중인 생명체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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