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민주주의의
심판대 위에 선 트럼프
도널드 트럼프는
선출된 독재자가
어떻게 권력을 공고히 하는지
교과서처럼 보여준 인물이었다.
그는 권력을 장악하는 데
필요한 세 가지 전형적 전략을
모두 구사했다.
심판을 매수하고,
상대의 주요 선수를 경기에서 내쫓고,
경기 규칙 자체를
유리하게 바꾸는 방식이다.
이 모든 흐름 속에서
미국 민주주의는
서서히 그 근간을 흔들리는
진동을 느껴야 했다.
러시아 스캔들을 수사하던
FBI 국장 코미를 해임한 사건은
그 서사의 시작이었다.
FBI 역사상 임기 도중
국장이 해임된 사례는
두 번뿐이다.
이조차도 트럼프 이전에는
초당적 지지 속에서
명백한 윤리 위반을 근거로 진행됐다.
그러나 트럼프의 해임은
정권의 도덕적 경계가
이미 위험한 수위를 넘어섰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심판을 매수하려 했던 시도는
단순히 FBI 국장 교체에 그치지 않았다.
뉴욕 남부지검의
프릿 바라라 검사 역시
자금세탁 수사를 진행하던 중
해임되었다.
트럼프에게는 사법부조차
자신의 충복이어야 했다.
법원이 독립적으로 기능할
권한을 가질 수 없다는 듯
그는 사법부의 개별 판결을
공개적으로 공격했다.
여행금지 명령에 제동을 건
제임스 로바트 판사도
그 대상이었고,
심지어 연방법원의 명령을 어긴
인종차별적 보안관
아르파이오를 사면하면서
사법부를 노골적으로
무력화하려 했다.
그러나 심판을
완전히 매수하는 데는 실패했다.
공직자윤리국(OGE)마저
압박하려 했지만
독립기구들은
완전히 굴복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 모든 시도는
트럼프가 민주주의 핵심 가치인
권력의 분립과 견제 시스템을
어떻게 해체하려 했는지를
여실히 드러낸 장면들이었다.
민주주의의 규칙을 바꾸려는 시도
트럼프는 언론을
'국민의 적'이라 불렀다.
뉴욕타임즈, CNN, 폴리티코 등
주요 언론사를 공격했고,
백악관 기자단에서도
이들을 제외시키는
이례적 조치를 취했다.
닉슨조차 워터게이트 시절
워싱턴포스트 기자들의
출입을 막은 사례 외에는
찾아볼 수 없는 행동이었다.
정권이 언론을 적대시하는 것은
독재로 기우는 전조와 다름없다.
그의 정치적 핵심 전략 중 하나는
투표 억제였다.
유권자 신분확인법(voter ID law)
도입을 확산시키며,
저소득층과 소수인종의
투표 참여 자체를 어렵게 만들었다.
인디애나, 조지아에서 시작된 이 법은
결국 연방대법원까지 가서
합헌 판결을 받았고,
공화당 주도 하에
37개 주로 확산되었다.
흑인과 라틴계가
운전면허증을 소지하지 못한 비율은
백인보다 두세 배 이상 높았다.
이 조치는 백인을
주 지지층으로 삼은 공화당에게
유리한 환경을 만들어주었다.

트럼프는 더욱 노골적인 방식으로
공정선거대통령자문위원회를 만들어
부정선거 사례를 수집하고
선거명부를 대대적으로 정리하려 했다.
이는 민주당 성향의
소수민족 유권자를
사실상 배제하려는 시도에 불과했다.
여당의 충성,
그리고 위험한 정점
미국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는
결국 여당의 자제였다.
공화당 지도부가
트럼프를 견제할 수 있을지 여부가
미국 민주주의의 향배를 가르는
결정적 요소였다.
실제로 트럼프 임기 초반
공화당 지도부는
충성과 견제 사이에서 갈등했다.
코미 해임 이후
일부 공화당 의원이 반기를 들었으나,
전반적으로
공화당 상원의원 85% 이상은
트럼프에게 찬성표를 던졌다.
그럼에도 트럼프는
자신이 직접 헌법을
파괴하지 않았다고 자부했다.
하지만 그가 만들어 놓은
새로운 정치적 분위기와 기준은
이후 등장할 누구라도
민주주의 가드레일을
더욱 쉽게 넘나들 수 있도록
만들어 버렸다.
트럼프 이후의 민주주의,
세 가지 시나리오
트럼프 이후
미국의 미래를 놓고
저자들은
세 가지 시나리오를 제시한다.
첫째는 가장 낙관적인 시나리오다.
민주주의 규범이
비교적 빠르게 회복되고,
트럼프 시대의 일탈이
하나의 예외로 기록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둘째는 암울한 시나리오다.
백인 민족주의를 기반으로
공화당이 계속 정권을 장악하고,
법적 제도를 개편하며,
유권자 제한, 이민 억제,
대규모 추방 정책을 통해
장기적 1당 지배를 구축하는 길이다.

셋째이자 가장 현실적인 시나리오는
‘지속적 양극화’다.
미국 정치가 민주적 관습에서
한 걸음씩 멀어지고,
상호불신과 제도 전쟁은
더욱 격화되며,
민주주의의 가드레일은
점차 희미해지는 시나리오다.
이 흐름 속에서
노스캐롤라이나의 사례는
매우 상징적이다.
인종적 게리맨더링과
유권자 정보의 악용,
주지사 선거 불복, 임명권 장악 등
민주주의 제도의
공정성을 훼손하는
다양한 시도가 반복되었다.
다시 ‘민주주의’라는
노래를 부르기 위하여
미국 민주주의의 위기는
단순히 정권 교체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민주당이 공화당처럼
전면전을 벌이거나
초강경 대응을 한다면,
오히려 민주주의의 붕괴를
촉진할 수 있다.
베네수엘라에서
야당이 쿠데타·파업·선거거부라는
초강수를 뒀지만
오히려 차베스 정권의 권력을
강화시키는 역효과를 불러왔던 역사는
이를 경고하고 있다.
반면 콜롬비아의 사례처럼
제도 내부에서
꾸준히 견제하고 협상하며
정당성을 유지하는 전략이
민주주의 회복에는 더 효과적일 수 있다.
장기적으로 미국은
두 가지 구조적 양극화 요인
(인종·종교적 재편과 심화하는 경제불평등)
에 집중해야 한다.

복지체계를 보편적 모델로 개편하고,
중하층 유권자 사이의
경제적 이해관계를 재조정해야 한다.
북유럽식 복지처럼
‘모두를 위한 복지’는
사회적 적대감을 낮추고
민주주의의 기반을 강화시킬 수 있다.
공화당 내부의 개혁 역시 필수적이다.
극단주의 세력을 배제하고,
다양성을 수용하며,
백인 개신교 의존도를 낮추는
당 재편이 없다면
미국 민주주의의 근본적 회복은 어렵다.
과거 서독의 기민당이
나치 이후 보수정당을
새롭게 재탄생시킨 사례처럼,
공화당도 재구성되어야 한다.
민주주의는 우리 모두의 몫이다
민주주의는
누군가에게 맡겨놓을 수 있는
제도가 아니다.
그 운명은 우리 모두의
손에 달려 있다.
이념으로만 남지 않고,
구호로만 떠돌지 않으며,
우리의 매일의 행동 속에서
유지되어야 하는 체계이다.

9회초의 점수처럼
결과는 확정되지 않았다.
여전히 민주주의라는 노래는,
후렴구가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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