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류기에서 피어나는 향과 입 안에 남는 기억
와인을 마시는 것이
자연과 테루아(terroir)를 마시는 일이라면,
증류주(spirit)를 마신다는 것은
열과 기술, 시간과 금속의 기억을
입에 담는 일이다.
그 시작은
증류(distillation)에서 시작되고,
그 여운은 테이스팅의 순간에 완성된다.
증류주의 세계는 종종 복잡하고
멀게 느껴지지만, 그
핵심은 생각보다 단순하다.
증류는 농축의 기술이고,
테이스팅은 감각의 해석이다.
이번 글에서는
증류주의 본질을 구성하는 두 축,
증류와 시음을 함께 다뤄보려 한다.
증류(Distillation)란 무엇인가?
증류는 혼합된 액체에서
특정 성분을 분리해 내는 공정이다.
증류주에서는 이 공정을 통해
알코올 농도를 높이는 것이 목적이다.
발효된 액체를 가열하면,
물보다 끓는점이 낮은
에탄올(ethanol)이 먼저 증발한다.
이 알코올 증기는
냉각 코일에서 응축되어 다시 액체로 바뀌며,
결과적으로 더 도수가 높은 술이 만들어진다.
이 과정은
‘스틸(still)’이라 불리는
증류 장치에서 진행되며,
증류주의 성격은
이 장치의 유형과 조작 방식에 따라
극적으로 달라진다.
증류기의 세계: 포트 스틸과 컬럼 스틸
포트 스틸(Pot Still) – 전통의 깊이를 담다.
포트 스틸은 가장 오래된 증류기 형태로,
대개 구리(copper)로 만들어진다.
발효된 액체를 넣고 가열하면
알코올이 증기로 증발하고,
이 증기는 냉각을 통해
고도수 액체로 전환된다.
이 방식은 배치(batch) 단위로
작동되기 때문에
시간이 오래 걸리고 효율은 낮지만,
그만큼 풍미와 구조감이 풍부한
술이 만들어진다.
포트 스틸에서는 증류 과정 중
다음 세 가지 분획을 구분한다.
헤드(Head)
먼저 끓는 성분으로, 메탄올(methanol) 등
해로운 성분 포함 → 폐기
하트(Heart)
순수한 알코올과 풍미를 포함한 중심 부분
→ 최종 술로 사용
테일(Tail)
잔여 알코올과 불순물
→ 향은 약하나 재증류 가능
포트 스틸 방식은
싱글 몰트 위스키(Single Malt Whisky),
코냑(Cognac), 아르마냑(Armagnac) 등
전통 증류주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된다.
컬럼 스틸(Column Still) – 산업과 효율의 정점
19세기 이후 등장한 컬럼 스틸은
연속 증류가 가능한 구조를 갖는다.
기둥 내부에서
증기와 액체가 반복적으로 교차되며
증류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보다 정제된 고도수 알코올을
빠르고 효율적으로 생산할 수 있다.
이 방식은 주로 보드카(Vodka),
산업용 럼(Rum),
대량 생산 위스키 등에 사용된다.
깔끔하고 깨끗한 술을 만들 수 있지만,
포트 스틸에 비해
복합적인 향은 적은 편이다.
특정 브랜드는
의도적으로 정제도를 낮추어
풍미를 일부 남기는
전략을 쓰기도 한다.
증류주의 도수와 특성
증류주는 증류 직후에는
60~95%의 고도수를 가지며,
이후 병입 전
보통 40% abv(알코올 도수)로 희석된다.
고도수 증류:
부드럽고 깨끗하지만 풍미 약함
저도수 증류:
풍미와 불순물이 더 많이 남아
무게감 있고 복합적
예를 들어, 위스키(Whisky)는
풍부한 구조감을 위해
비교적 낮은 증류도로 생산되며,
보드카(Vodka)는 높은 증류도를 통해
가능한 한 깔끔하고 무취에 가까운
성질을 추구한다.
증류주 테이스팅(Tasting Spirits)의
네 가지 기준
증류주 테이스팅은 와인과 마찬가지로
외관, 향, 맛, 피니시를을 중심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고도수 특성상
약간의 주의와 테크닉이 필요하다.
① 외관(Appearance)
투명도의 흐림은
오염이나 보관 문제를 나타낸다.
색상을 통해서 숙성 여부를 확인하는데
이 때 화이트 증류주는 무색, 브라운은
오크 숙성 또는 캐러멜 첨가로 판단할 수 있다.
② 향(Nose)
고도수의 증류주는
냄새를 맡기 어려울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보통 1:1 비율로
물과 희석 후 평가하게 된다.
향의 주요 분류는 다음과 같다.
원재료(곡물, 포도, 당밀 등)
숙성 향(바닐라, 견과류, 나무껍질)
산화나 노화에 따른 부케(부싯돌, 솔벤트 등)
스월링(Swirling)은 필요하지 않으며,
잔을 가볍게 돌려 알코올을 날린 후
천천히 향을 감지하는 것이 좋다.
③ 맛(Palate)
맛을 볼 때는
입 안에서 천천히 굴리며 구조를 살핀다.
핵심 평가 포인트는
알코올의 부드러움과 통합성,
바디감과 당도
맛의 층위감과 일관성 등을 보면 된다.
보드카(Vodka)는
크리미하고 깨끗한 질감을,
럼(Rum)은
당밀의 단맛과 스파이시함을,
위스키(Whisky)는
나무 향, 곡물 향, 스모키함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여준다.
④ 피니시(Finish)
피니시/여운은
증류주 품질을 결정짓는
핵심 요소 중 하나다.
단순한 증류주는
삼킨 직후 끊기지만,
고급 증류주는
여러 겹의 풍미가 천천히 이어진다.
예를 들어 잘 숙성된 코냑은
포도 향 → 바닐라 향
→ 토스트 향 → 아몬드 향
→ 건포도 향으로
이어지는 여운을 남긴다.
증류주한 잔 안에 담긴 정제의 예술
증류주는 단순한 고도수의 술이 아니다.
그것은 불필요한 것들을 덜어내고
남긴 가장 순수한 농도,
그리고 기술과 열, 시간과
직관이 만들어낸 감각의 결정체다.
포트 스틸에서 천천히 모아낸 하트(Heart),
컬럼 스틸에서 정제된 투명함,
오크통 속에서 수년간 이어지는 숙성까지
그 모든 과정을 지나
최종적으로 잔에 담긴 그 한 모금은,
기억보다 더 오래 입 안에 머문다.
알콜을 증류한다는 건
결국 향을 응축하는 일이며,
증류주를 테이스팅한다는 건
그 향을 다시 펼쳐 읽는 일이다.
한 잔 속에 담긴
복합성과 여운이
잊고 지내던 몸의 감각을 일깨우고,
또 한 번 마시고 싶은 이유가 된다.
'Wines and Spirits' 카테고리의 다른 글
| 21. 증류주(Spirit)의 스타일 (0) | 2025.04.22 |
|---|---|
| 19. 셰리(Sherry)와 포트(Port) – 시간과 산화가 만들어낸 깊이의 미학 (0) | 2025.04.21 |
| 18. 스위트 와인(Sweet Wines)의 달콤한 진심 (0) | 2025.04.21 |
| 17. 스파클링 와인(Sparkling Wines)의 세계 (0) | 2025.04.21 |
| 16. 미국과 남미, 강렬함과 순수함이 공존하는 와인 (0) | 2025.04.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