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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노트

[기억의 뇌과학] 망각의 예술

by 아콩대디 2025. 6.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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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떻게 기억을 잊고,

새롭게 만든 걸까?

 

 

하루에도 수십 번씩, 

우리는 무언가를 잊는다.

 

이름, 약속, 대화, 감정,

때로는 단어 하나가

입안에서 맴돌다 사라지고,

때로는 너무도 또렷하던 기억이

엉뚱한 이미지로 바뀌어 되살아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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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뇌과학』은

이러한 익숙한 혼란을

뇌과학의 시선으로 설명한다.

 

 

우리는 정말

과거를 기억하고 있는 걸까?

 

아니면 매번 새롭게 조합해낸

'이야기'를 믿고 있는 걸까?

 



기억은 완벽하게 저장되지 않는다



기억은 사진처럼 저장되지 않는다. 

 

우리가 기억하는 장면은, 

당시 주의를 기울인 

정보의 조각일 뿐이다. 

 

 

 

 

상황의 전체가 아니라, 

나의 관심과 감정, 

편견에 의해 선택된 

단편들이 연결된 것이다. 

 

이 단편들은 

기억의 저장 전부터, 

저장 이후까지 

끊임없이 편집되고 왜곡된다.

특히 기억이 

장기기억으로 옮겨가기 전, 

즉 생성된 직후 

몇 시간에서 며칠 동안이 

가장 취약한 시간이다.

 

 

 

이때 상상이나 추측, 

타인의 말, 심지어 질문 방식까지 

영향을 미친다. 

 

뇌는 이 모든 정보를 섞어 

기억을 완성하고, 

우리는 그것을 '진짜'라고 믿는다.

 



언어가 기억을 바꾼다: 

질문의 위력

 

 



기억을 좌우하는 

요소 중 하나는 '언어'다. 

 

누군가에게 

"차들이 부딪쳤을 때 

얼마나 빨랐습니까?"

라고 묻는 것과 

"차들이 박살났을 때 

얼마나 빨랐습니까?"

라고 묻는 것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같은 사건을 본 사람들도 

단어 하나에 따라 

속도를 16km나 

높게 추정하기도 했다.

 

 



실험에서

"깨진 유리를 보았습니까?"

라는 질문을 받은 사람들은

실제로 영상에 깨진 유리가 없음에도

이를 봤다고 착각했다.

 

우리의 뇌는 단서를 받아들여,

실제 경험하지 않은 일조차

'기억'해버릴 수 있다.

 

이 얼마나 섬뜩하면서도 흥미로운가.

 



감각을 언어로 바꾸는 순간, 

왜곡은 시작된다



우리는 경험을 

언어로 옮기는 순간, 

원래의 감각을 축소하거나 

왜곡하게 된다. 

 

시각, 청각, 촉각, 후각의 

풍부한 인상들은 

말로 옮기며 단순화된다. 

 

 

 

글로 써보는 행동조차 

기억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 

 

강도 장면을 본 사람들에게 

이를 글로 쓰게 하자, 

기억 정확도가 오히려 떨어졌다. 

 

기억은 고정된 저장소가 아니라, 

매번 덮어쓰는 

이야기의 문장처럼 바뀐다.

이처럼 일화기억은 

우리 입을 떠나는 순간, 

더 이상 원래의 모습이 아니다. 

 

 

그 자리를 작화증처럼

'만들어진 기억'이

차지하기도 한다.

 

기억은 진실이라기보다,

감정과 맥락이 조합된 이야기다.

 



섬광기억도 영원하지 않다

 

"잊을 수 없는 장면이야."



우리는 종종 이렇게 말하지만,

실제로는 잊을 수 없는 게 아니다.

 

우주왕복선 폭발을

목격했던 사람들에게

2년 반 후 당시의 기억을 물었더니,

아무도 원래의 기록과

일치하지 않았다.

 

 

 

오히려 나중 기억을

진짜라고 믿는 이들도 있었다.

심지어 절반 이상의 사람들은 

목격자의 증언만으로 

죄 없는 사람을 범인으로 지목했다. 

 

기억은 우리의 확신과 다르게, 

언제든 틀릴 수 있는 

허약한 구조물이다.

 



설단현상과 '못된 언니들'



가장 흔한 기억 실패 중 하나가

'설단현상(Tip of the tongue)'이다.

 

아는 단어가 목구멍까지 왔는데

도저히 떠오르지 않는 경우다.

 

 

 

이 현상은 단어를 구성하는

신경회로가

부분적으로만

활성화되어 있을 때 발생한다.

 

이때 비슷한 단어들이

먼저 떠오르는데,

심리학자들은 이들을

'신데렐라의 못된 언니들'

이라 부른다.

 

애매하게 닮은 단어들이

진짜 기억을 가로막기 때문이다.

 

 


특히 사람 이름은 

기억인출의 최대 난관이다. 

 

이름은 대부분 다른 정보와 

연관성이 적기 때문에 

단서가 부족하고, 

그만큼 불러내기 어렵다. 

 

'베이커리'를 

직업으로 기억할 때는 

쉽게 떠올릴 수 있지만, 

'베이커'라는 이름으로는 

연결될 정보가 없어 

기억이 더 어렵다는 

'베이커의 역설'도 이 때문이다.

 



미래기억과 실수, 그리고 마케팅



미래기억(prospective memory)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을 

기억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기능은 

외부 단서 없이는 쉽게 망각된다.

 

 

 

'나중에 와인을 들고 파티에 가야지'

생각해도,

현관에 와인을 두지 않으면

잊어버리기 쉽다.

 

마케팅 회사들이

무료 체험 이후

자동 결제를 유도하는 것도

이 지점을 노린다.

실제로 첼리스트 요요마는 

30억 원짜리 첼로를 

택시 트렁크에 두고 내렸고, 

다른 첼리스트도 

400만 달러짜리 악기를 두고 내렸다. 

 

수술 중에 가위나 스펀지를 

환자 몸속에 남기는 실수조차도 

단순 건망증이 아닌, 

단서 부재로 인한 

미래기억 실패의 사례다.

 



잊는 것도 능력이다

 

 

망각은 무능함이 아니라 능력이다. 

 

에빙하우스의 망각곡선은 

기억이 급속히 사라지는 

과정을 보여주지만, 

반복하거나 의미를 부여하면 

다시 살아난다. 

 

불필요한 정보는 지워지고, 

중요한 정보는 남는다. 

 

우리는 단조로운 일상을 

잊음으로써 

내일을 위한 기억 공간을 확보한다.

그리고, 나쁜 기억을 

지우는 연습도 가능하다. 

 

PTSD 환자들을 위한 

기억의 재구성 훈련처럼, 

트라우마적 기억은 

의도적으로 상상을 통해 

바꿔 나갈 수 있다. 

 

마치 잘못 배운 골프스윙을 수정하듯, 

기억도 연습으로 교정할 수 있다.

기억은 완벽한 기록이 아니라, 

감정과 이야기로 덮여 있는 

모래 위의 발자국이다. 

 

『기억의 뇌과학』은 

그 흔적들을 들여다보며 

우리에게 이렇게 말한다.

 

"기억이 우리 전부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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