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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노트

[불행 피하기 기술] 주의력이라는 보이지 않는 자산

by 아콩대디 2025. 4.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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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에 주의력을 빼앗기면서 살아가는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내 하루는 누구의 것이었을까?

어제의 시간은 정말 ‘나의 의지’로

구성되었을까?


하루의 끝에 이르러 돌아보면, 

의외로 많은 순간들이 나의 선택이 아니라
자극적인 알림, 끊임없는 피드, 

무의식적인 클릭에 의해 

조정되었던 것 같다.

 

시도 때도 없이 울리는 아이폰을

들었다 놨다 할 수 밖에 없는 현실.

그렇게 매 순간 주의를 빼앗긴다.

 

사실 시간을 빼앗기는 것보다 무서운 건,
주의력을 빼앗기는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자기가 ‘주의를 기울인 것’으로

정체성을 만들어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나는 지금 

누구로 만들어지고 있는가?



최근 읽고 있는 책인

'불행 피하기 기술(롤프 도벨리 著)'라는

책에서 본 한 문장이 떠오른다.

 

"주의력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나의 자원이다."

"시간과 돈보다도 더 중요하다."

 


이 문장은 삶에 날카로운 질문을 던진다.

 

사람들은 시간과 돈은 철저하게 계산하지만,

주의력에 대한 관심은 조금 떨어진다.

 

 


나 역시도 지금까지

시간과 돈은 철저하게 계산해 왔다.


그러나 내 주의력, 

즉 ‘무엇에 집중했고, 

어디에 몰입했는지’는 거의 무감각했다.

결국, 진짜 다뤄야 할 것은

눈에 보이는 자원이 아니라
보이지 않지만

삶 전체를 움직이는 ‘주의력’이다.


그리고 이 주의력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자기 객관화'라는 

개념이 반드시 필요하다.

 

자신이 어디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는 뜻이다.

 



주의력은 삶의 방향을 정하는 선택이다.

 

심리학자 윌리엄 제임스는

“주의는 의식의 조종기”라고 말했다.


한 사람이 무엇에 주의를 기울이느냐에 따라
그의 사고, 감정, 

나아가 인생의 질까지 달라진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주의력은

단순히 눈을 돌리는 행위가 아니라,
삶의 흐름을 결정하는

방향 설정이라 할 수 있다.

요즘 같이 초단위로 변화하는

시대를 살며 느끼는 건,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주의력의 중요성을

과소평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의식하지 않고 있지만,

우리가 하는 모든 행동이

주의력을 투입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으로 나뉜다는 걸

까맣게 잊고 있는 것일지 모른다.

 

진심으로 주의력에 귀를 기울이면

어떤 사람과 이야기할지를 선택하고,
어떤 가치에 시간을 투자할지를 결정하며,
어떤 감정을 받아들일지를 

스스로 다룰 수 있게 된다.


주의력이 약해지면 

삶은 외부에 의해 설계된다.


그날의 뉴스, SNS 알고리즘, 

타인의 말 한마디에 개인의 하루가

이리저리 흔들릴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결국 삶은 방향성을 잃고, 

무의미한 에너지 소모로 피폐해진다.


그 피로는 단순한 바쁨이 아니라,
주의의 방향을 잃어버린 사람만이 

느끼는 정서적 고갈이라 할 수 있다.

 




뇌과학으로 본 주의력의 구조

 

주의력은 뇌의 특정 부위, 

특히 전전두엽(Prefrontal Cortex)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한다.


이 영역은 계획, 판단, 의사결정, 

그리고 집중력을 담당한다.


하지만 이 부위는 

매우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하며, 

쉽게 피로해진다.

 

 


디지털 기기의 빈번한 알림은

이 전전두엽을 반복적으로 자극하고,
이로 인해 개인의 주의력은

깊은 몰입 상태에 도달하지 못한 채
‘얕은 처리’만 반복하게 된다.


특히 요즘처럼 SNS나 숏폼이

범람하는 시대에

영상을 보는 것만으로도

뇌는 도파민을 분비시키며
‘즉각적 만족’을 

선호하게 만드는 구조를 형성한다.

결국 우리는 뇌의 회로 자체를
깊은 집중보다 산만함에 

최적화된 구조로 만들어가고 있는 셈이다.


이런 점에서 주의력 회복은 

단순한 습관 개선이 아니라,
뇌의 사용 패턴을 재조정하는 

신경학적 회복 과정이기도 하다.

 




철학이 말하는 주의력 : 존재에 대한 자각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는 

인간을 ‘현존재(Dasein)’라고 정의했다.


이는 인간이 세상 속에 던져져 있지만, 

동시에 자기 삶의 의미를 

스스로 물을 수 있는 존재라는 뜻이다.


하이데거에게 있어 ‘주의’는 

존재를 가능하게 하는 행위다.


자신의 삶을 의식적으로 바라보지 않는다면,
그는 단지 시스템에 의해 

소비되고 흘러가는 객체일 뿐인 것이다.

또한 불교 명상에서 발전한 

마인드풀니스(Mindfulness)의 개념도
주의력과 깊은 관련이 있다.


마인드풀니스는 

현재, 지금 이순간에

깨어 있는 주의력을 말하며,
이것이야말로 고통과 번뇌에서 벗어나는 

첫걸음으로 간주된다.

무엇에 주의를 기울이는가?
이 질문은 곧,
나는 지금 누구인가?

나는 어떤 존재가 되고자 하는가?라는
철학적 질문으로 확장되기도 하기에

주의력은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존재의 방식이다.

 




'자기 객관화'는 삶을 설계하는 실천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자기 객관화'는
철학적 질문과 신경학적 건강을 아우르는
가장 현실적인 자기보존 방식이다.

어느 순간부터 일정한 시간 동안

디지털 디톡스를를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한다.


SNS 사용 시간을 줄이고, 

하루에 한 번 뉴스를 훑는 것으로

제한하는 것으로 하고,
불필요한 알림을 꺼두며,
책상 위에는

하루에 한 가지 일만 올려놓는다.


그 결과, 삶은 단순해졌다.
단순함은 곧 명확함이다.


무엇에 시간을 쓰고 있는지,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지가 분명해졌다.

주의력은 매일 아침 지급되는 에너지인데,
그 에너지를 어디에 쓸지는 

오직 나의 선택에 달려 있는 것이다.

 



주의력을 대접하는 삶은

결국 나를 존중하는 삶이다

 

다시, 처음 이야기로 돌아가 본다.


주의력은 시간보다 중요하고,
돈보다도 귀한 자산이다.

주의력을 어디에 쓰느냐는 결국
‘내가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 된다.


만약 매일 타인의 삶을 부러워하고,
소셜미디어에서 누군가를 질투하며,
자극적인 기사에 분노하고 있다면
그것이 지금 현재, 나의 삶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기 객관화'는
자신을 지키는 

가장 현실적이고 철학적인 도구다.


삶을 단순하게 한다는 것은
삶을 소홀하게 한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단순함은 본질에 집중하게 해준다.

이제 더 이상 무작정 더하지 않으려 한다.


그 대신 스스로를 돌아보고

덜어내는 연습을 계속할 것이다.


그리고 이 ‘주의력의 대접’을 통해
조금 더 나다워지고, 

조금 더 깊어질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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