템프라니요(Tempranillo)에서
알바리뇨(Albariño)까지,
이베리아 반도의 와인 여정
유럽 와인의 전통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종종 프랑스나 이탈리아를
먼저 떠올린다.
하지만 진정한 시간의 힘을 아는 나라,
오크 숙성에 관대한 민족,
그리고 고유 품종의
다채로움을 간직한 대지를 꼽는다면,
스페인과 포르투갈만큼
깊은 내공을 지닌 곳은 드물다.
이베리아 반도의 두 나라는
와인을 마시는 문화보다는
시간과 함께
와인을 키우는 문화를 중심에 둔다.
오래된 빈티지가 보편적이고,
오크 숙성은 품질의 상징이며,
토착 품종은
그 지역의 언어처럼 자연스럽다.
이번에는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대표 지역과 품종,
그리고 스타일을 따라가며
그 풍요로움을 천천히 탐험해본다.
스페인 와인의
가장 뚜렷한 특징 중 하나는
숙성 기준에 따른 분류 체계다.
스페인의 숙성 기준은
크리안사(Crianza),
레세르바(Reserva),
그란 레세르바(Gran Reserva)로
나누어 진다.
와인 병에서 마주치는 용어만 봐도
와인의 스타일과 숙성 정도를
짐작할 수 있다.
크리안사(Crianza)
레드 와인의 경우 최소 2년 숙성,
이 중 6개월 이상은
오크에서 숙성되어야 한다.
신선함과 오크의 밸런스가
조화로운 스타일이다.
레세르바(Reserva)
최소 3년 숙성, 1년 이상은
오크에서 되어야 한다.
과일 향은 부드러워지고
스파이스와 바닐라 향이 나타난다.
그란 레세르바(Gran Reserva)
최소 5년 이상 숙성,
그중 2년 이상은
오크에서 진행해야 한다.
장기 숙성에 적합한
빈티지에만 생산되며,
고급스러운 복합미가 특징이다.
이러한 숙성 기준은
와인의 시간을 투명하게 보여주는 요소다.
프랑스가 ‘지역’을,
독일이 ‘포도의 상태’를 강조한다면,
스페인은
‘시간’으로 와인의 가치를 말하는 셈이다.
템프라니요(Tempranillo)의 본고장,
리오하(Rioja)와
리베라 델 두에로(Ribera del Duero)
스페인을 대표하는 레드 품종은
단연 템프라니요(Tempranillo)다.
이름 그대로
‘조숙한(temprano)’ 품종으로,
빨리 익어수확이 빠르다는 특징을 가진다.
이 품종은
스페인 전역에서 재배되지만,
지역에 따라 스타일이 확연히 다르다.
리오하(Rioja) DOCa는
템프라니요의 고전적 스타일이
정립된 지역이다.
중간 바디에 적당한 산도와 탄닌,
오크 숙성에서 오는
바닐라, 가죽, 향신료 향이 어우러진다.
가르나차(Garnacha)와 블렌딩되기도 하며,
숙성 스타일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
리베라 델 두에로(Ribera del Duero) DO는
좀 더 강건하고 구조감 있는 스타일이다.
템프라니요를 단일 품종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으며,
블랙 프루트(블랙베리, 자두)와
오크, 타르 느낌이 두드러진다.
그 외에도 나바라(Navarra) DO는
템프라니요를
메를로(Merlot),
카베르네 소비뇽(Cabernet Sauvignon)과
블렌딩하는 데 능하고,
프리오라트(Priorat) DOCa는
가르나차(Garnacha) 기반의
강렬한 와인으로
고급 레드 와인의 명성을 쌓고 있다.
새로운 중심지,
카탈루냐(Catalunya)와
리아스 바이샤스(Rías Baixas)
카탈루냐(Catalunya)는
스페인 동부에 위치한 지역으로,
고전적 스타일뿐 아니라
현대적인 와인의 실험장이기도 하다.
템프라니요 외에도
다양한 품종이 블렌딩되며,
다양한 기후와 토양에서
다채로운 스타일이 나온다.
한편, 스페인의 북서부
리아스 바이샤스(Rías Baixas)는
화이트 와인의 보석인
알바리뇨(Albariño)의 본고장이다.
신선한 산도,
사과, 배, 자몽 같은 과일 향,
드라이하면서도
생기 있는 질감이 특징으로,
해산물과의 궁합이 탁월하다.
대중적인 생산지,
라 만차(La Mancha)와
발데페냐스(Valdepeñas)
라 만차(La Mancha) DO와
발데페냐스(Valdepeñas) DO는
광대한 평야에서
대량의 와인을 생산하는 지역이다.
주로 템프라니요, 가르나차,
그리고 일부 국제 품종이 재배된다.
고온 건조한 기후에서 오는
높은 당도와 빠른 숙성이 특징이며,
가격 대비 품질이 뛰어난
데일리 와인으로 사랑받는다.
포르투갈의 두 얼굴,
도우루(Douro)와
비뉴 베르드(Vinho Verde)
포르투갈 와인의 세계는
도우루(Douro) 강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전통적으로는
포트 와인 생산지로 유명하지만,
이제는 고급 레드 와인 산지로서도
위상이 높다.
주로 토우리가 나시오날(Touriga Nacional),
토우리가 프랑카(Touriga Franca),
틴타 로리즈
(Tinta Roriz, 템프라니요의 포르투갈식 이름)
등이 사용된다.
도우루 와인은
진한 색감과 짙은 베리 향,
높은 탄닌과 산도를 기반으로
긴 숙성력을 자랑한다.
블렌딩이 기본이며,
종종 오크에서 숙성된다.
포르투갈의 바롤로(Barolo)라 불릴 만큼
구조감과 깊이가 탁월한 와인들이 많다.
비뉴 베르드(Vinho Verde) DOC는
포르투갈 북서부의
청량한 화이트 와인 산지며
상쾌한 화이트 와인의 대명사다.
‘초록 와인’이라는 이름처럼,
이 와인은 대체로 가볍고 상큼하며,
약간의 탄산감을 동반한다.
대표 품종은
로우레이루(Loureiro),
알바리뉴(Alvarinho) 등이 있으며,
레몬, 청사과, 자몽 등의 향을 지닌다.
알코올 도수는 낮고,
스타일은 미디엄 스위트부터
드라이까지 다양하지만
대부분은 생동감 있고
깔끔한 마무리를 자랑한다.
해산물 요리와의 페어링에 최적화된 와인이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유럽 와인의 역사 속에서도
가장 묵직하고 진한 붓질을 해온 나라들이다.
그들의 와인은 격식보다는 시간,
그리고 기후와 사람의 이야기를
먼저 전한다.
여유롭게 숙성된 와인 한 병을 열면,
그 속에는 수년 혹은 수십 년의
계절이 녹아 있고,
그 땅을 걸어온 사람들의
발자취가 배어 있다.
오늘 마시는 리오하가
단지 ‘템프라니요’로만
느껴지지 않기를 바란다.
거기엔 ‘그란 레세르바’라는 시간,
‘리아스 바이샤스’의 바닷바람,
‘도우루 계곡’의 햇살이
숨어 있다는 걸,
잔을 들기 전부터 알아차릴 수 있다면
이미 이베리아 반도의
와인을 이해하기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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