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Wines and Spirits

11. 프랑스 와인, 테루아의 집합체를 따라 걷다

by 아콩대디 2025. 4. 20.
반응형

보르도부터 알자스까지,

지역이 품은 맛의 정체성

와인을 이야기할 때

프랑스를 빼놓고 말할 수 있을까?

 

프랑스는 오랜 역사 속에서

‘와인’이라는 문화 자체를 만들어온 나라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지역과 포도 품종,

그리고 그것들이 자라난

기후와 토양의 미묘한 차이를 담아내는

‘테루아(terroir)’의 철학이 있다.

이번에는 

프랑스 와인의 대표 산지들을 따라가며, 

각 지역이 지닌 특색과 

그 안에서 피어나는 

와인의 향을 들여다보려 한다.

 



보르도 – 구조감 있는 블렌딩의 미학

 

프랑스 남서부에 위치한 보르도(Bordeaux)는

전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와인 산지 중 하나다.

 

이곳의 대표 품종은

카베르네 소비뇽(Cabernet Sauvignon)과

메를로(Merlot)다.

 

일반적으로 레드 와인은

이 두 품종의

블렌딩을 중심으로 만들어지며,

화이트 와인에서는

소비뇽 블랑(Sauvignon Blanc)과

세미용(Sémillon)이 주를 이룬다.

보르도 와인을 이야기할 때

자주 등장하는 단어 중 하나는

샤토(Château)다.

 

이는 와인이 특정 포도밭에서

재배된 포도로 생산되었음을 뜻하며,

양조 시설을 포함한

와이너리를 통칭하기도 한다.

 

와인의 품질이 뛰어난 곳은

크뤼 클라세(Cru Classé)로 분류되며,

그 중에서도

특히 ‘그랑 크뤼(Grand Cru)’

혹은 ‘크뤼 부르주아(Cru Bourgeois)’와

같은 등급이 부여된다.

또한 보르도는 

와인의 스타일에 따라 구분되는데,

메독(Médoc)과 오-메독(Haut-Médoc)은

구조감 있는

카베르네 소비뇽 중심 와인으로 유명하며,

생떼밀리옹(Saint-Émilion)과

포므롤(Pomerol)은

메를로 중심의

부드럽고 풍부한 와인을 생산한다.

 

디저트 와인으로는

고급 스위트 와인인

소테른(Sauternes)이 이 지역의 자랑이다.

 



부르고뉴 – 한 품종으로 표현하는 섬세함

 

보르도가 블렌딩의 조화에 장점이 있다면,

부르고뉴(Burgundy)는

단일 품종의 순수함이 있다.

 

이곳의 대표 레드 와인은 피노누아(Pinot Noir),

화이트 와인은 샤르도네(Chardonnay)다.


부르고뉴의 와인은 

일반적으로 지역, 마을, 포도밭 순으로 

세분화되며, 

마을명을 따서

뉘 생 조르주(Nuits-Saint-Georges),

포마르(Pommard),

샹볼 뮈지니(Chambolle-Musigny)

같은 이름이 라벨에 적힌다.

 

이 중에서도

특히 품질이 뛰어난 포도밭은

프리미에 크뤼(Premier Cru)

혹은 그랑 크뤼(Grand Cru)로 지정된다.

 

대표적인 그랑 크뤼는

모노폴 와인으로 유명한

로마네 꽁띠(Romanée-Conti)가 있다.

부르고뉴에서 

와인을 생산하는 곳은

‘도멘(Domaine)’이라 불리며, 

자체 포도밭에서 

포도를 재배하고 

직접 양조까지 진행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이는 곧 와인에 대한 

철저한 품질 관리와 

철학적 일관성을 의미하기도 한다.

 



알자스 – 향기로운 백포도의 향연

 

독일과 국경을 맞댄

프랑스 동부의 알자스(Alsace)는

리슬링(Riesling)과

게뷔르츠트라미너(Gewürztraminer) 같은

아로마틱한 화이트 와인의 성지다.

이 지역은 포도 품종을 

라벨에 표기하는 

드문 프랑스 지역 중 하나이며, 

보통 와인은 단일 품종으로 양조된다. 

 

게뷔르츠트라미너는 

특히 향이 강한 품종으로, 

장미, 리치, 생강, 시나몬 등의 

향이 풍부하고 

알코올 도수도 높은 경우가 많다. 

 

드라이에서 스위트까지 

다양한 스타일로 만나볼 수 있다.

고도 높은 산맥이

북풍을 차단해주고

아침 햇살이 포도를 데우는 덕분에

이곳 포도는 천천히 익으며

복합적인 향과 맛을 갖추게 된다.

 

알자스 와인은

높은 향과 선명한 산도,

그리고 어떤 음식과도

잘 어울리는 실용성이 큰 장점이다.

 



루아르 밸리 – 산뜻함의 대명사

 

프랑스 중심부의

루아르 밸리(Loire Valley)는

소비뇽 블랑(Sauvignon Blanc),

슈냉 블랑(Chenin Blanc),

멜롱 블랑(Melon Blanc) 등

다양한 화이트 품종의 보고다.

이 지역은 크게 

상세르(Sancerre), 

푸이 퓌메(Pouilly-Fumé), 

부브레(Vouvray), 

뮤스카데(Muscadet) 등으로 나뉘며, 

스타일 또한 

가볍고 산뜻한 드라이 와인에서부터 

미디엄 바디의 

세미 스위트 와인까지 다양하다. 

 

특히, 뉘앙스 있는 미네랄 향과 함께한 

푸이 퓌메의 소비뇽 블랑은 

여름날 해산물과 

완벽한 페어링을 자랑한다.

 



론 밸리 – 진한 태양, 짙은 향

 

프랑스 남동부의

론 밸리(Rhône Valley)는

북쪽과 남쪽으로 크게 나뉘며,

스타일도 뚜렷하게 다르다.

 

북부 론(Northern Rhône)은

시라(Syrah) 단일 품종을,

남부 론(Southern Rhône)은

그르나슈(Grenache)를 중심으로

블렌딩한 와인이 대부분이다.

코트-로티(Côte-Rôtie), 

에르미타주(Hermitage) 같은 지역은 

풍부한 과실 향과 향신료, 

그리고 짙은 색조와 구조감을 갖춘 

시라 와인으로 유명하며, 

남부의

샤토뇌프 뒤 파프

(Châteauneuf-du-Pape)에서는

다양한 품종이 섞인

복합적인 와인을 생산한다.

 



랑그도크-루시용 & IGP – 와인의 대중화

 

마지막으로 

랑그도크-루시용

(Languedoc-Roussillon) 지역은 

프랑스에서 

가장 많은 와인을 생산하는 곳으로, 

비교적 저렴하고 캐주얼한 

와인을 접하기 좋다.

 

IGP(Indication Géographique Protégée)

또는 Vin de France로

라벨링되는 와인들이

품종이나 지역의 구속 없이

보다 자유로운 스타일로 만들어진다.

 

이곳에서는

그르나슈, 시라, 무르베드르 등을

블렌딩하여 만든

미디엄 바디에서

풀바디 와인이 주를 이룬다.

 



프랑스의

주요 와인 산지를

천천히 둘러보다 보면,

단순히 ‘맛있는 와인’이 아니라

‘그곳의 이야기’를 담은

한 병을 마신다는 느낌이 든다.

 

포도나무가 뿌리내린 토양,

불어온 바람,

그리고 수세기 동안 쌓여온

양조 전통이

한 병에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것 같다.

프랑스 와인을 마신다는 건

어쩌면 그 지역의

시간을 음미하는 일이 아닐까 싶다.

 

오늘 마시는 와인이

어느 지역의 햇살과 비를 머금었는지

떠올려본다면,

그 맛은 훨씬 더 깊어질지도 모르겠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