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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노트

[대한민국 부동산 부의 역사] 교육, 네트워크, 입지로 풀어보는 부동산의 흐름

by 아콩대디 2025. 6.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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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서 부동산은

단순한 주거 공간을 넘어

인간 삶의 흐름을 결정짓는

중요한 변수다.

 

 

『대한민국 부동산 부의 역사』는

고대에서 현대까지 이어져 온

부동산과 인간 삶의 관계를

교육과 네트워크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조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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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작인

『대한민국 아파트 부의 지도』가

직장과 소득 중심으로

부동산 입지를 분석했다면,

이번 책은 교육이라는 요소를 중심으로

부동산 가치의 형성과 변화 과정을

심층적으로 분석한다.

 



교육환경이 만들어낸 

입지의 프리미엄

 


교육은 고대부터 

인간이 도시를 만들어 온 

핵심 원동력이었다. 

 

수렵·채집 시대를 넘어 

농경이 시작되면서 

잉여 생산물이 생겼고, 

이를 기반으로 

전문 직업과 위계질서가 형성되었다. 

 

도시는 이렇게 탄생했고, 

교육은 도시를 유지하는 

지식 인프라로 자리 잡았다. 

 

아테네, 파리, 피렌체, 보스턴, 

그리고 고려의 개경이 

모두 이러한 도시 발전의 산물이다.

 

 



고려시대 개경에는 

사교육 시장이 활성화돼 있었다. 

 

최충이 설립한 문헌공도와 

12개의 사학들은 

과거 시험이라는 

관문을 통과하기 위한 

교육의 장이 되었고, 

교육을 통한 신분 상승이 가능한 

구조가 확립되었다. 

 

이승장, 정도전 등 

고려와 조선 초기의 주요 인재들이 

이 체계를 거쳤다. 

 

교육은 단순한 학문 수양이 아니라, 

가문과 개인의 사회적 지위를 

결정하는 중요한 수단이었다.

 



이 흐름은 조선시대로도 이어졌다. 

 

조선 건국세력은 

고려의 사학이 

기득권 형성의 도구로 

전락한 것을 경계하며 

성균관 중심의 국가 교육체계를 강화했다. 

 

그러나 결국 한양으로 집중된 

교육 인프라는 

다시 새로운 교육 중심지를 형성했고, 

중부학당·동부학당 등 4학은 

이후 한양 중심의 

새로운 엘리트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토대가 되었다.

 



지방의 교육 네트워크와 성장

 


한편, 선산처럼 조용한 시골이 

학문과 인재의 산실이 된 사례도 등장한다. 

 

길재를 중심으로 성립된 

선산의 학문적 기반은 

장기간 과거 급제자를 배출하며 

지역 명문으로 자리 잡았다. 

 

선산이 교통 요지였다는 입지적 이점, 

수경집합법을 통한 농업생산성 향상, 

저수지 확보 등 경제적 토대가 

교육 성장과 맞물렸다.

 

 



조선 전기에는 

영남 지역이 학문과 정치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이황, 김종직, 김굉필, 유성룡 등 

성리학적 전통을 계승한 

수많은 인재들이 이 지역에서 배출됐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과거 급제자들은 한양으로 상경했고, 

이들이 자리를 잡으며 

점차 한양이 새로운 기득권 중심지가 되었다.

 



한양 집중과 경화사족의 형성

 

 

조선 후기로 갈수록

한양 중심의 경화사족이 형성되었다.

 

장동 김씨, 달성 서씨, 청송 심씨 등

유력 가문들이 한양에 정착하며

문과 급제자의 대부분을 배출했다.

 

17세기 이후

한양 출신 급제자의 비율은

꾸준히 증가해

19세기에는 80%를 넘어섰다.

 

 

 

서울은 단순한 수도가 아닌,

정치·경제·교육 네트워크의

최정점으로 변모했다.

정약용은 이 현상을 

정확히 꿰뚫어 보았다. 

 

그는 폐족이 된 상황에서도 

후손들이

 반드시 한양에서 머물 것을 강조하며, 

입지와 네트워크의 중요성을 

후대에 전했다. 

 

 

 

 

당시 한양살이는 

단순한 생활권의 문제가 아니라 

향후 가문의 명운을 좌우하는 

중대한 선택이었다.

 


 

네트워크의 본질로서 

교육의 재정의

 


교육은 단순히 

지식을 습득하는 과정이 아니라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시스템이다. 

 

지식과 기술은 학교에서, 

인격 형성은 가정에서 이뤄진다. 

 

그러나 결정적인 차이는 

결국 누군가와 

연결되는 능력에 있다.

 

교육을 통해 

구축되는 네트워크는 

시간이 지날수록 

개인의 기회, 자산, 

사회적 안전망을 결정짓는다.

현대 한국의 사례에서도 

이 현상은 뚜렷하다. 

 

서울대학교 출신이 

법조·정치·관료 분야에서 

압도적인 비율을 차지하는 것은 

단순한 성적 결과가 아니라 

네트워크 확장의 귀결이다. 

 

 

 

법학전문대학원, 의학전문대학원 등 

새로운 제도가 생겨난 것도 

이러한 흐름과 맞물려 있다. 

 

IMF 이후 전문대학원 제도의 확대는 

상류층이 학벌 네트워크를 

강화하는 수단으로 활용되기도 했다.

 



인기 학군지의 흥망성쇠


고교 평준화 제도가 도입되면서 

학군지라는 현상이 

더욱 고착화되었다.

 

공정한 교육 기회를

제공한다는 명분 아래

실질적으로는 거주지에 따른

교육 격차가 심화됐다.

 

강남·서초·송파를 포함한 강남 3구와

목동·노원 등지의 일반고는

과밀학급임에도

교육적 경쟁력을 유지하며

부동산 가치까지 동반 상승시켰다.

1975년 5만호 수준이었던 

서울 아파트는 

2020년 177만호로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이 과정에서 특정 시기에 

대규모 입주가 이뤄진 구역들은 

시간이 흐르며 

재건축 수요가 집중되고 있다. 

 

 

1980년대 강남·강동의 집중, 

1990년대 노원·양천·강서의 확장, 

2000년대 이후 성북·은평·송파의 

개발 흐름은 

서울 부동산 시장의 

주기적 입지 이동을 보여준다.

 



부동산 가치의 본질은 

결국 ‘사람’

 


『대한민국 부동산 부의 역사』는 

결국 부동산 가치의 본질이 

물리적 입지보다 

사람과 네트워크라는 점을 강조한다. 

 

입지는 

그저 네트워크가 형성되는 장을 

제공할 뿐이다. 

 

인맥·학연·직업적 연결이 가능한 곳이 

곧 가치를 만들어낸다. 

 

서울의 한복판이든, 

한강 네트워크를 활용한 외곽 도시든, 

교류 가능성과 접근성이 핵심 요소다.

 

 


이러한 역사적 통찰은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교육특구, 인기 학군, 전문대학원, 

평준화의 풍선효과 등 

모두가 네트워크 중심의 

자산 형성을 뒷받침하는 장치로 

기능하고 있다. 

 

부동산 가격은 

단순한 주거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자본 축적의 반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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