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멸의 유전자』는
단순한 생물학 책이 아니다.
이 책은 유전자의
과학적 원리와
기술적 응용을 넘어서,
그 유전자가
사회와 인간 존재를
어떻게 재편해왔는지를
다층적으로 조망한다.

이번에는 특히
우생학의 역사, 인간의 재설계,
그리고 과학기술의
윤리적 경계를 다룬다.
유전자를 중심에 두고
우리가 어떤 세계를 만들었고,
앞으로 어떤 미래를
마주할 것인가에 대한
거대한 물음을 던진다.
유전자가 만든 위계
: 우생학의 그림자
책은 우생학이라는 말만 들어도
느껴지는 그 불편한 역사에 대해
매우 날카롭고 구체적으로 조명한다.
우생학은 ‘좋은 유전자’와
‘나쁜 유전자’를 가르고,
‘열등한 유전자’를 지닌
사람들의 생식을 통제하거나
사회에서 배제해야 한다는 주장을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해왔다.
가장 대표적인 예는
나치 독일의 인종청소다.
하지만 이 사상은
독일만의 것이 아니었다.
미국에서도 20세기 초
수많은 ‘정신지체자’,
‘빈곤층 여성’들이
강제로 단종당했다.
그들은
‘유전적으로 문제 있는 사람들’로
분류되었고,
이는 철저히 위계적이고
차별적인 과학이었다.
『불멸의 유전자』는
과학이 결코 중립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우생학은
‘객관적 유전정보’가 아니라,
‘정치적 이데올로기’가 입힌
과학적 옷에 불과했다.
DNA는 분자 단위의
정보일 뿐이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시선이
이미 위계와 배제를 전제한다면,
과학은 무기가 된다.
인간의 재설계
: 기술이 욕망을 만날 때
다음으로 책은
유전자 조작, 배아 편집,
생명공학 기술이
어떻게 ‘더 나은 인간’을
만들겠다는 꿈과
만나는지를 다룬다.
현대의 유전공학 기술은
크리스퍼(CRISPR)처럼
정확하게 DNA 서열을
조작할 수 있게 만들었다.
이 기술은 암, 유전병,
난치질환 치료에 대한
희망을 안겨줬지만,
동시에 인간의 ‘기획’이라는
새로운 차원의 문제를 제기한다.
만약 키, 지능, 외모, 성격까지
조작 가능한 시대가 온다면
우리는 여전히 인간일 수 있을까?
부모가 선택한
‘디자이너 베이비’는
누구의 욕망을 살고 있는가?
여기서
가장 인상 깊은 부분은,
기술은 할 수 있다고 해서
해도 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기술은 인간의 윤리와
철학 없이 존재할 수 없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유전자를 바꾸려 하는가?”
라는 질문은
단지 과학기술의 경계를
묻는 것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정의 그 자체를
묻는 철학적 질문이다.
유전자의 윤리, 기술의 정치
또한 책은
유전공학 기술의
사회적 함의를 되짚는다.
DNA 데이터는
이미 다양한 방식으로
수집·분석되고 있고,
유전체 분석 기업은
개인의 건강, 질병 예측,
심지어 조상의 뿌리까지
알려준다고 홍보한다.
하지만 여기에 함정이 있다.
이 정보들은
누구의 손에 있는가?
그 정보로
무엇을 할 수 있는가?
개인의 유전정보는
보험료를 결정하는
자료가 될 수도 있고,
채용과 입학의 기준으로
활용될 수도 있다.
심지어 특정 집단에 대한
유전적 우월성 주장에
악용될 가능성도 있다.
이 책은
기술의 중립성을 해체하고,
데이터를 소유한 자가
권력을 갖는 시대에
우리가 어떤 윤리적 감각을
가져야 하는지를 강조한다.
특히 주석에서
인용된 다수의 사례들,
예를 들어
미국의 ‘지능 유전자 연구’나,
영국 내 유전자 데이터 수집과
관련된 법적 논란 등은
DNA 정보가 더 이상
과학자들만의 연구 대상이 아니라
사회 전체가 논의해야 할
윤리적·정치적 사안임을 보여준다.
유전자를 넘어서,
인간의 존엄으로
『불멸의 유전자』는
유전자가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다는
환상을 걷어낸다.
오히려 유전자는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얼마나 많은 억압과 통제를
가능하게 해왔는지를 보여준다.
우리는 이제
과학적 발견이 아니라
인간다운 선택을 해야 할
시점에 와 있다.
더 나은 인간이란
무엇인가?
우월한 유전자란
존재하는가?
유전정보를
관리하는 것은 누구이며,
그 책임은 어디에 있는가?
『불멸의 유전자』는
그 모든 질문에
명확한 정답을 주지 않는다.
대신 이 책은 독자에게
사유를 요구한다.
생명을 기술로
다룰 수 있는 이 시대에
과학은 반드시 철학과
함께여야 한다고 말이다.
책의 말미는
주석과 참고문헌으로
채워져 있지만,
그 안에서도
저자의 태도는 명확히 드러난다.
한 줄의 인용,
한 편의 연구결과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를
독자 스스로 질문하게 만든다.

이 책은 유전자를 둘러싼
과학적 서사를 넘어,
존재의 본질과 사회의 구조,
윤리의 원칙까지 질문하게 만든다.
결국, 우리는 누구인가?
DNA로 환원될 수 없는 존재인가?
혹은 데이터를 가진 자에게
결정되는 존재인가?
그 질문 앞에서,
『불멸의 유전자』는
과학서이면서
동시에 인간학이 된다.
이 책을 읽는다는 건,
우리를 구성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우리가 추구해야 할
인간다움이 무엇인지를
묻는 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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